언론보도

[중기이코노미] 지금껏 절대 겪고 싶지 않았던 상황…파산신청

작성자
회생희망센터
작성일
2020-02-26 14:33
조회
1370
 

지금껏 절대 겪고 싶지 않았던 상황…파산신청

[재기도전 중소기업인 수기] ③-㊤ 인터넷 정보 제각각, 맞춤안 필요

 

추억을 펼치며…지난 2년여간 고통스런 이야기

먼저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지난 2년여 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첫 제목을 추억이라고 쓸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아마 첫 소제목의 단어부터 지금의 내가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상징적인 단어가 되는 것 같아, 아무 생각없이 제목을 매겼음에도 맘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지난 2년간의 회사 폐업과 개인 파산 및 면책 그리고 재취업, 또 그 후의 재창업 과정을 나누면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경험담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지금 하고 있거나 혹은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를 분들께 작은 희망이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약 15년 가까이 같은 업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그간 쌓인 경험과 제작자로서의 비전을 가지고, 2012년 1월부터 작은 개발업체 설립을 준비했다. 그해 8월 법인을 설립하고 정식으로 회사 운영을 시작했다.

약 1년간을 맨 땅에 헤딩하듯이 악전고투하던 중 운 좋게도 계약처와 투자사를 동시에 만나게 됐다. 계약과 투자가 완료되면서 회사에는 역량을 갖춘 직원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고, 개발도 왕성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약 4년간 법인을 운영하면서 서비스하려는 개발물도 점점 그 틀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성장의 정체와 경영의 어려움 그리고 예견된 위기

당시에는 쓰는 돈과 나가는 돈, 그리고 개발 상황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서 2~3년간 필요한 돈이 투자와 계약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고 회사가 안정적으로 잘 커나가고 있다고 착각을 했다.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었고 임직원의 수도 늘어나, 겉으로 보기에 뭔가 잘 되고 있는 회사로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만, 매출 기반의 법인 운영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에 대해 당시에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규모 있는 투자를 성공리에 이끌어 왔다. 그런데 그 다음 투자를 준비하려 할 때, 시장상황의 큰 변화가 중국시장으로부터 찾아왔다. 한 때 수출을 위해 찾았던 중국시장의 수많은 제품들이 도리어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찾아오는 시기가 도래했다.

사업에 몰입해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이 일이 아니면 인생이 끝날 것 같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긴 힘들 것 같다는 탈진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사업이 잘 될 때는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못 느끼다가 상황이 힘들어지면 갑자기 다가오는 여러 스트레스에 정신이 나갈 정도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가 만든 제품의 끝을 보겠다는 소수의 인원들마저 회사를 떠나면서, 사무실의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기 2개월 전 모든 직원이 회사를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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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건, 인터넷 상의 많은 정보가 하나같이 달랐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동일할진대 개인에게 적용되는 건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텅 빈 사무실에 늘 습관처럼 일찍 출근해 앉아 있으면서, 이제 이 회사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어떻게 부채를 감당해야 하나 등의 고민에 빠졌다. 결국 법인을 폐업하고 투자사와 거래처에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을 정리하게 된다.

 

개인 파산신청을 망설이며 겪었던 심리적 고통

그렇게 고통스런 날을 보내고 있던 중, 먼저 사업을 시작했고 결과가 좋지 않아 법인 파산과 개인 파산을 함께 진행했던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친구로부터 그간 겪어왔던 사업 실패의 고통과 파산의 아픔, 그리고 그 파산에서 면책 받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사업을 해 왔지만 개인 파산이 뭔지, 면책이 뭔지, 회생이 뭔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지식과 이해가 전혀 없기에 파산과 면책 과정이 여전히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파산자가 되면 어떡하나?, 내가 가진 부채로 인해 집에 압류 딱지가 붙으면 어떡하지?, 아내와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좌절하고 실망할까?, 이제 내 인생은 이걸로 끝나는 것 아닐까?, 파산하면 취직도 못한다는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가족들에게 금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피해가 가면 어떡하지?”

이런 근거 없고 잘못된 질문들이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대낮에 길을 다녀도 숨이 턱턱 막히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부담을 안고, 파산과 면책 그리고 회생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 상에서 뒤져보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인터넷 상의 많은 정보가 하나같이 달랐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는 같은데,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은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여전히 불안함을 떨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케이스를 찾아도 개인에 따라 법 집행결과가 다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파산 방식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과 대안을 제시해 준 변호사들을 만나게 됐다. 면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당면한 현실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눈앞에 주어진 상황에 대해 객관적이고 법률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파산신청…그저 잘 끝내야 되겠다는 생각뿐 이었다

이후 조언자와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파산을 진행하게 됐다. 파산에 필요한 과정들은, 처음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꾸려나갔던 일련의 과정들에 비하면 기능적으로는 식은죽 먹기에 가까웠다. 다만 감정적인 부분에서 과거의 치부나 개인의 상세정보들이 다 공개되는 듯한 고통을 수반했다. 마치 묵은 때를 벗겨내듯이 지난 모든 행적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곱씹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은 결심이고 시작이지, 시작한 후에는 이미 시작된 일이니 그저 빨리 잘 끝내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도 사업적으로 어려운 다른 대표들과 내 과거에 대해 함께 복기하고 조언해 줄 때에도, 상대 대표들도 그런 부분을 제일 힘들어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껏 자기가 겪어 보지 못했던 상황일 테고, 절대 겪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업이야 새로 시작할 때 부푼 꿈을 안고 어려움을 이겨 낼만한 에너지를 얻지만, 파산은 코앞만 보게 되면 그렇진 않다. 그러나 더 길게 보게 되면 당면한 현실을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아가는 좋은 시도라고 보면 정확하다.

하지만 그 시점에 그렇게 생각할 순 없었다. 지나온 시간들이라 지금 이렇게 판단될 뿐, 참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결국, 파산 신청을 하게 됐다. 가장 먼저 느낀 변화인데, 채권자의 채무이행독촉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이다. 파산 신청을 하게 되면 사건번호를 받게 된다. 추심업체나 대부업체는 해당 사건번호를 받게 되면 일단 추심을 완화하거나 진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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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장 어려운 것은 결심이고 시작이지, 시작한 후에는 이미 시작된 일이니 그저 빨리 잘 끝내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 당시에는 “왜 추심을 중지할까?” 의문을 가졌는데,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파산 신청을 했다는 것은 일단 경제적으로 사망신고를 한 것과 같다. 추심업체도 파산을 신청한 사람에게 추심을 진행한다는 것은 실익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아마 추심을 종료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사실에 안도했지만, 한편으론 상심도 있었다. 경제적인 활동을 못하는 사람으로 잠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부채가 누적되고 사업이 기울어져 갈 때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현실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파산, 분노가 먼저 찾아와…가족에 미안한 마음 가득

신청 후 사건번호를 받고 한두 달 뒤, 법원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사실 그 전에 법원이란 곳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법원을 찾아갔다. 법원에 처음 가서 크게 놀랐다. 파산신청과 관련한 인원이 거기에 너무나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정 하나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처지라는 것에 한편으론 놀랐고, 또 한편으로는 부분적인 안도감도 들었다.

첫 법원에 갔을 때, 관재인이라는 법원의 대리인들과 만나 향후 진행사항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내야 하는 서류의 종류와 양에 살짝 놀랐고, 관재인과의 첫 미팅이 언제 잡힐지도 몰라서 불안했다.

집으로 돌아와 서류들을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잘 하지 않았던 바깥 나들이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은행과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부채를 증명하고, 가계자금은 어떻게 운용했는지 증빙할 자료를 찾고, 준비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맨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회사를 수년 간 열심히 운영하면서, 횡령이나 사기 혹은 임금체불 등의 문제와 한번도 얽힌 적이 없었다. 그러나 법원은 나를 경제사범으로 보고 있으며, 사기나 횡령 등의 혐의가 없는지 조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회사를 운영했건 간에, 결국 파산해서 사회경제에 해를 끼친 사람이 된 것이다.

 

횡령이나 사기가 없음을 증명해야 했다. 물론 실제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식의 제도가 마련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는 장치들이 좀 마련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됐다.

파산 신청을 한 후 법원에서는 가족, 특히 배우자와 나 사이의 금전관계에 대한 모든 서류를 요구했다. 거짓 파산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결국 사업과 상관없는 가족들이 내 파산과정으로 인해 재산내역을 은행과 관공서를 다니며 발급해 와야 하는 수고를 감내했다. 말이 좋아 서류 신청이지, 그런 서류들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뻔히 알고 있을 기관들로부터 서류를 요청하는 일이 얼마나 짜증나고 힘들었을지….

나 자신도 더 위축됐다. 아버지께 개인사정을 말씀 드리고 재산내역을 달라는 얘기를 했을때,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알았다고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사실 자식으로서, 가장으로서, 못 보일 꼴을 보인 것이다.

가족과 관련된 사항 외에 자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증빙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사업을 진행할 때 겪었던 여러 일들에 비하면 어려움을 느낄만한 절차는 없었다.

파산이 시작되면 이런 일들을 겪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이라 감내해 줄 수 있고 이해해 줄 수 있으며, 그런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파산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공=중기이코노미 객원 김남주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도담)]

 

http://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24738